<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움베르토 에코 저, 이윤기 옮김, 열린 책들 펴냄

<장미의 이름>

김덕종

 

132711월 말경에 이탈리아 북부의 한 수도원에서 7일 동안에 일어난 살인사건과 교황과 황제측 사절단 회의를 기록한 아드송의 수기(手記)’를 옮겨 놓은 것이 이 소설이다.

 

비밀 임무를 띠고 수도원을 순례중인 현자 월리엄 수도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시자 아드소 수련사는 수도원에 도착하여 그 전날 일어난 한 수도사의 죽음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원장의 부탁을 받는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제2, 3의 죽음이 다섯 번째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 수도원에서는 중요한 사절단의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중세 유럽은 십자군 전쟁의 끝 무렵인데 교회는 막강한 권력과 부를 누리며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타락하였고, 이에 반발하는 교단에서 청빈운동이 일어나 일부는 민란의 수준으로 까지 발전한다. 사절단회의는 청빈운동을 중심으로 교황과 황제, 교황과 수도원, 황제와 수도원, 수도원과 수도원의 이해관계, 교리해석을 따라 이단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된다.

 

청빈이란 예수님이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듯이 수도자들도 소박해야 된다는 것이다. 말이 풀을 먹되 소유하지 않고 이용만 하듯이, 수도사들도 먹고 입고 자되 여기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용하는 것일 뿐 소유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하여 아비뇽의 교황 쪽에서는 사용은 곧 소유라고 해석한다. 소유는 곧 권력을 의미한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스토리 축은 장서관이다. 빛이요 생명인 말씀을 기록하여 보관하는 권위의 상징 장서관에는 금서를 두고 암투가 진행된다. 전통적 신비주의 신학을 지키려는 교권주의자 호르헤 노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시학에서 웃음은 예술이며 세상의 문이 열리는 문이다라는 희극론은 종말을 재촉하고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라 여겨 이 책을 누구도 보지 못하게 하고, 이미 읽은 사람들을 하나씩 죽게 하는 연쇄살인을 일으킨다.

 

추리, 종교, 역사소설로 두루 충실한 이 소설은 007 제임스본드 격인 월리엄 수도사가 신학과 자연과학과 기호학의 모든 지식을 망라하여 복잡한 사건을 모두 풀어내는 과정에 묘미가 있다. 당시의 종교재판 이단론 종말론 말세론 등의 세태를 엿볼 수 있다. 장서관의 비밀, 아프리카의 끝 방에서 주인공들의 마지막 공방 중에 발생한 화재로 그 큰 수도원 전체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는 클라이맥스도 인상적이다.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한갓 덧없음을 상징하는 장미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쓴 것도 이와 연관이 있으리라.

 

아비뇽의 옛날 교황청을 방문했을 때 중세 교회의 타락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폐허가 된 그 큰 건물의 어두운 무채색에 질겁했던 기억이 있다. 또 부활절에 필리핀에서 보았던 페니텐츠(회개: 철사로 만든 면류관을 쓰고 철사 가시 채찍으로 스스로를 내리 치며 행진하는 사람들의 피비린내 나던 참회행사)가 회상되었다. 종교란 정말 위대한 것이지만 위험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서관의 목록엔 서기 1300년대 당시 신학 뿐 아니라 천문학 연금술 약초학 마술 자연과학 희극 등의 엄청난 문헌들이 나온다. 현대 문명을 준비하는 지식의 축적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양피지에 필사로 책을 베끼는 모습은 고려시대인 1251년에 완성한 팔만대장경이 벌써 한지에 목판 인쇄로 찍었다는 사실과 비교된다.

 

이 책은 목차에 각 장마다 요약을 붙여 놓아 이로써도 대충의 줄거리는 알 수 있지만 복잡한 스토리 외에도 작가의 섬세한 현장묘사나 심리묘사 상황묘사 그리고 치열한 신학적 논점정리 등의 뛰어난 명문장들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1986년 초판이후 몇 차례 개역하여 원래 한국어로 쓰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번역의 완성도가 높다.*

  • 작성일
  •   :  2018-11-28
  • 보   도
  •   :  과천독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