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할미꽃을 찾아서



    동강할미꽃을 찾아서 /김덕종

 

201749일 오전.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 운치리 백운산 점재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는 굽이치는 강을 따라 병풍을 두른 듯한 깎아지른 바위 절벽을 따라 간다. 아직 잎이 나지 않는 나목들 덕에 울긋불긋한 바위의 속살이 다 드러난다. 강물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절경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 주차장에 차를 두고 서성이는데 농무인지 미세먼지인지 하늘이 뿌옇게 흐리고 찬바람이 세게 불어 귀가 시리다. 빨간 모자를 쓴 산불감시원 어르신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어제처럼 햇볕좋은 날 오시지...

그런데 어제 오신 분이 물어보던데,

혹시 이 풀의 이름을 아시우?”

 

사진에는 잔디 씨처럼 꽃대를 세운 사초과 식물이 있었으나 열한명의 일행 중 아무도 그 이름을 대지 못하였다. 그리고는 바로 저만치 보이는, 그늘에 정자를 거느리고 서있는 노거수로 눈이 갔다. 비술나무다. 가지에 허연 수액을 줄줄 흘리고 서있는 고유한 특징이 잘 보인다. 그러고 보니 강을 따라가는 길가에도 비술나무들이 즐비했다. 자세히 보면 암술과 수술의 꽃을 달고 있다. 작년에 정선에서 가로수로 많이 보였던 그 나무다. (열매에 닭 벼슬 같은 날개가 있어 벼슬나무가 변하여 비술나무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시무나무, 아카시 나무를 지나 강가 모래밭에는 도꼬마리 군락이 보이고, 산행 초입에 들어서자 자생하는 비비추 군락이 있었다. 산괴불주머니가 핀 산기슭에는 말냉이, 미나리냉이, 나도냉이, 전호, 대극, 노란장대 등이 나타났다. 명제님은 재빨리 노랑장대 어린잎을 나물로 한참 뜯었다. 나도냉이는 귀화식물이라고 한다. 이곳에 회양목이 군락으로 자라는 것도 특이하였다.

산민들레가 있었다. 토종민들레가 가지는 외총포끝의 삼각형 돌기가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개화기를 맞아서 일제히 하얀 꽃을 피우고 있는 돌단풍이 물가 바위 끝에 붙어있는 모습은 단아하고 귀티마저 보였다. 나중엔 너무 많아 잡초 같았지만... 노간주나무가 서있던 바위벽 아래는 개부처손이 넓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바위손은 남부지방에 있으나 건기에는 잎이 동그랗게 말리는데 비해 개부처손은 말리지 않으며 잎을 뒤집어보면 영양엽과 포자엽의 구별이 보인다.

 

동강제비꽃도 있었다. 연보랏빛 꽃잎의 끝에는 하얀 띠를 두르고 있어 투톤으로 보이며 예쁘기가 마치 개량한 화초 같다. 긴오이풀, 동강기름나물, 뻐꾹채, 족제비싸리, 싸리나무, 산뽕나무, 산조팝나무, 잎이 마주난 키버드나무, 왕느릅나무 등과 함께 드디어 동강할미꽃을 만났다. 오직 동강의 석회암지대에만 자라는 한국특산식물. 이 꽃을 보기위하여 먼 길을 달려 이곳까지 온 것이다. 동강할미꽃은 할미꽃과 달리 꽃이 하늘을 향해 핀다.

꽃은 분홍빛, 보랏빛, 청보랏빛과 흰색까지도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꽃잎도 둥글지 않고 비교적 밋밋하다. 꽃대가 위를 향하지 않고 옆이나 밑을 향한 것도 조금 있어서 애매한 경우도 있었다. 바위벽 어중간히 높은 곳에 동강할미꽃과 돌단풍이 바싹 붙어 자라고 있었다. 작은 새의 둥지 같은 모습에 삼촌은 아름다운 공생이라 하고 명제님은 잘못된 만남이라하여 한바탕 웃었다.

 

동강할미꽃은 3월말 4월 초에 피는데 개화시간이 약 열흘뿐이며 우리가 본 것은 거의 끝물이라 시든 꽃이 많았다. 매년 열리는 동강할미꽃 축제도 끝난 뒤다. 그러나 유구한 동강의 물줄기를 흘끔 바라보며 척박한 석회암 바위벽에 붙어서 겨우 생명을 부지하는, 말라비틀어진 묵은 잎더미 위로 새로 자라서 솜털을 잔뜩 달고 하늘을 향해 꽃술을 여는 동강할미꽃은 정말 사연이 있는 할매의 전설을 말해주는 듯, 나도 한때는 예쁜 새 각시였다는 말을 하려는 듯 슬픈 듯 곱게도 피어있었다.

이제 막 연두색 잎눈을 티우기 시작한 봄의 강가에서 명제님이 준비해온 송기떡(소나무 속껍질을 넣어 만든 찹쌀떡)을 나눠먹으며 우리는 아름다운 동강을 만끽하였다. 여름에 수량이 많아지면 들어올 수 없는 지역, 굽이진 동강은 곳곳에서 여울지고, 안개도 걷히고 바람도 잦아져 햇살이 살며시 나오는데, 명제님의 정선 아리랑 가락이 강물 위를 둥둥 떠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동강 비밀의 화원을 천천히 빠져나오고 있었다.

 

눈이 오려나 비가 오려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주차장에서 산불감시원 아저씨가 물어본 사초과 식물은 획인해보니 동강고랭이(혹은 정선 황새풀)라는 것인데, 화려한 동강할매에 가려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벼랑에 묵은 잎을 수염처럼 누렇게 길게 늘어뜨린 모습은 정말 동강할배라는 별칭이 그럴 듯하였다. 다행이다. 동강할매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동강할배가 있었으니까.

 

다시 차를 타고 40km를 나와 영월군 남면 창원리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그 뒷산을 올랐다. 개복숭아, 딱지꽃, 호랑버들 암꽃, 할미꽃, 일본 잎갈나무 등이 보이더니 이 지점의 목표중 하나였던 줄댕강나무를 만났다. 북방식물인 시베리아 살구는 작고 동그란 예쁜 꽃을 피워내고 옅은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동강 일대에 많이 보이는 시베리아 살구는 꽃도 작고 열매도 납작하여 먹지는 못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왕느릅나무도 많았는데 나뭇가지에 화살대의 날개처럼 좁은 날개가 2줄로 붙어있어 특이하였다. 그 곁에 보이는 화살나무는 크고 뚜렷한 날개가 4줄로 붙어있어 혼동할 일은 없겠다. 흰민들레와 서양민들레, 호제비꽃, 서울제비꽃, 구기자나무, 개차조기, 조뱅이, 오이풀, 대추나무, 으아리, 대극, 솜나물, 무릇, 솔나물, 북나무, 대나물, 개암나무, 장대냉이 등을 보았다. 특히 장대냉이의 잎을 촬영하여 확대하니 육안으로 볼 수 없었던 5갈래의 성상모가 뚜렷이 나타남을 처음으로 보았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큼직한 야광나무 그늘 아래 있는 넓은잎제비꽃이었다. 멸종위기에 처한 식물 2급에 해당하는 희귀종으로 북방식물인데 수년전에 자생지가 보고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고산지역의 나무아래 그늘이어서 찬 공기를 유지한 것이 생존의 조건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분홍빛 큰 꽃은 피었으나 아직 철이 일러 둥근 잎이 활짝 펴지지는 못하였다. 남획으로 군락지가 마구 패여 있어 씁쓸하였다.

다시 식당으로 내려오니 길건너 산록에 노거수는 내가 본 최고령의 살구나무였으며 그 아래 두릅나무가 있었고 엉킨 철조망 같은 무섭게 생긴 기둥나무는 주엽나무였다. 가시가 납작하면 주엽나무 통통하면 조각자나무라고 한다는 삼촌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의 산행은 끝이 났다.*

(도움말 ㅇㅇ삼촌)

 

  • 작성일
  •   :  2017-04-10
  • 보   도
  •   :  백석본초연구회